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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칼럼] 블랙미러 : 아크엔젤
[이진영 칼럼] 블랙미러 : 아크엔젤
  • 이진영 기자
  • 승인 2019.05.03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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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 : 아크엔젤' 이미지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 : 아크엔젤' 이미지

[디포인트 = 이진영 기자]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는 말이 있다. 이는 상대에 대한 걱정을 표현한 말이지만, 어떨 때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결여된 표현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표현에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좋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보급되어있다. 이런 스마트폰을 이용한 과보호가 성행하는데, 스마트폰 통제 앱을 통해 데이터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실시간 위치추적, 인터넷 사이트 사용기록 조회 등등 자녀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테러를 방지하겠다는 명목하에 국민의 이메일, 카드이용명세 조회, 전화를 도청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가족이,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일이라고 과연 용납할 수 있는 일일까?

<블랙미러 : 아크엔젤>은 ‘아크엔젤’이라는 첨단 디바이스를 뇌 속에 심어 아이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등 아이를 보다 쉽고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이다. 극의 주인공 마리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었고, 아이를 잃어버리자 곧바로 아크엔젤을 딸 사라에게 이식한다. 아크엔젤 덕분에 아이의 눈을 통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손쉽게 위치를 파악하고 유해한 것도 보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 필터링 때문에 사람의 감정을 읽지도 못하고, 사회적 결함 등이 발견된다. 마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크엔젤의 모든 기능을 정지한 후 태블릿을 창고에 보관하게 된다. 이후 사라는 정상적으로 잘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마리는 사라가 늦게 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아크엔젤 태블릿을 도로 꺼내게 된다. 그리고 두 모녀의 사이는 나락으로 치닫게 된다.

극의 구성과 소품 사용이 뛰어난 에피소드였다. 어린 사라에게 공포감을 주었던 강아지는 마지막에 사라지고 없었으며, 분노에 차서 태블릿을 휘두를 때, 마리의 얼굴이 모자이크되어있던 것도 흥미롭다. 자기가 만들어낸 참상이 끝내 드러났을 때, 사라의 표정은 머리에서 잊히질 않는다. 사라가 짐을 챙겨 떠나버리자 절규하는 마리의 모습은 처음 사라를 잃었을 때의 외침과 대조되어 묵질한 불쾌감을 남긴다. 마리는 어디까지나 사라를 위해 아크엔젤을 이용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아크엔젤 때문에 홀로 키운 딸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블랙미러 : 아크엔젤>에 사용된 요소들은 앞선 시리즈에서 사용된 것들이 많다. 상대방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스폐셜로 제작되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보았던 요소이며, 보는 것을 모두 기억하는 장치는 <당신의 모든 순가>에서 등장했던 그레인과 유사하다. 앞서 보여졌던 모자이크나 그레인이 가지고 있는 끔찍함은 사회적 전반에서 보여지는 상황을 담았다면, <아크엔젤>에서는 가족, 엄마와 딸이라는 한정된 인물들을 주목한다. 이는 막연히 ‘저럴지도 몰라’에서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앞서 언급했듯이 비슷한 일이 스마트폰을 통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이 과연 용납할 수 있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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