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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전문가 칼럼] 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 변종석 기자
  • 승인 2020.06.16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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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공식 포스터
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공식 포스터

[디포인트 = 변종석 기자] 어느 누가 억압받길 원할까. 그저 자신이 태어난 환경이나 종교, 성별이 누군가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혹은 그러한 것이 억압이라는 것도 모를 때가 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공동체가 그러했고, 종교의 가르침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행동한다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숨겨야만 했을까.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미국과 독일이 합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이다. 총 4편으로 제작된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파일럿 에피소드는 뉴욕의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나고 자란 에스티가 도망치듯 베를린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엄격한 유대교 공동체에서 벗어난 에스티는 베를린의 음악원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유롭고 다양한 사람들이 음악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것이었다.

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이미지
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이미지

한편 에스티의 남편인 얀키는 임신한 자신의 아내 에스티를 찾기 위해 친척인 모이셰와 함께한다. 결국, 그들은 에스티의 피아노 강사에게서 에스티가 베를린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베를린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전체적으로 잔잔한 전개되지만, 밑에서 끌어올린 듯한 힘이 넘치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자신의 가발을 벗어버리고 반제 호수에 몸을 띄우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파일럿 에피소드만으로는 에스티가 왜 가발을 쓰게 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종종 자주 밖으로 나도는 자식의 머리를 밀어버린다는 표현이 사용된다. 머리칼을 자르는 것도 아니고, 바짝 밀어버리는 것은 일종의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끊는다. 그리고 긴 머리칼을 잘라낸다는 것은 여성성에 대한 거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구시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여성이 민머리가 된다면 부끄러워할 것이라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에스티는 가발을 벗어 던진다.

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이미지
미국·독일 합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이미지

우리는 억압에서 벗어난 상황에 일종의 희열을 느끼기 마련이다. 쇼생크를 탈출한 앤드류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릴 때, 야자 열매를 모아 다시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용이 자신이 여기있다며 외칠 때 느꼈던 희열은 엄청난 것이었다. 자신을 억압하던 문화, 종교를 벗어던진 에스티가 자신의 가발을 벗어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데보라 펠드만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그리고 베틀린에서>의 원제는 <Unorthodox>다. 보통 ‘전통적이 아닌’, 혹은 ‘특이한’, 종교적으로는 ‘이단’으로 번역된다. 이는 자신의 전통적이고 억압된 삶에서 자유의 공간이 되는 베를린으로 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제목일 것이다. 1화를 감상하다 보면, ‘어째서 베를린인가?’ 고민하게 된다. 이는 극 중에 등장한 랍비를 비롯한 얀키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베를린으로 향하게 되었을까. 단순히 어머니를 따라간 것일까. 더욱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넷플릭스에서 시청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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